
"화나기도 하고, 그보다 실망감이 더 커요. 그런데 그 문제가 돈이다보니 별로 얘기도 하고 싶어지지 않아요. 솔직한 마음이에요. 요즘의 고민이 그러합니다."
새로운 광고주 미팅을 다녀오던 길에 대표님과 식사를 하며 요즘의 고민거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팀의 이제 막 3년차가 되었거나 아직 갓 1년도 채 채우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연차로 보나 실력으로보나 아직 이직을 한다거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갖을만한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이미 그런것 같다. 한번씩 툭하고 튀어나는 불만섞인 이야기들의 핵심은 돈이다. 여기서 돈이란 그들이 받는 급여를 뜻한다.
사실, 우리회사는 윗선에는 좀 박할지언정 주니어들에겐 연봉을 후하게 주는 편이다. 주니어들의 연봉은 동종 업계에서 늘 상위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 대표님의 철학이기 때문에 난 사실 아이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불만이 있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들이 일하는 양과 질적인 측면에 대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다른듯 하다. 스스로가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나와 같은 업력의 세대들이 보기엔 그 때의 30%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업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조정된 것이 벌써 몇 해 전부터 일어난 일이다. 나나 선배들이나 대체 왜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부분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나누었었는데, 거기엔 작금의 업계상황도 크게 한몫을 하는 것 같다.
경력직들을 구하기 어려우니 '0.5년차 경력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터무니없는 경력의 소유자들에게도 일단은 추파를 던지고 본다. 그들이 현재받는 연봉보다 2-30%씩 높게 연봉을 불러 혹하게 한 뒤, 일단 입사부터 시키고 본다는 주의인거다. 그러고 나면 그 뒤는 뻔하다. 너무나 박한 연봉 인상률에 일들은 후지기 그지없다. 그럼 당연히 이직을 했던 아이들은 종국엔 업에 환멸을 느끼고 업을 떠나기 부지기수. 이 싸이클의 반복이다. 결국엔 업을 전체적으로 갉아먹는 짓인데, 아이들은 그걸 모른다. 당장에 보이는 눈 앞의 이익과 달콤한 유혹에 10이면 8-9는 넘어간다. 한번쯤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멀리보고, 넓게보라는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불만의 원인이 돈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에는 말조차 꺼내기 싫어진다. 그러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그리 변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실망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이 좋은 선배가 아닐까 싶다. 업계에서 만난 좋은 선배 말이다. 광고업계가 참 각박하고 비인간적인 곳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진심으로 일을 해왔다면 자신을 아껴주거나 자신이 따르는 좋은 선배 한명 쯤은 반드시 필요한 업계이기도하다. 아직 미약한 경험으로 판단이 흐려질 때, 그래서 옳지 못한 선택에 욕심이 날 때, 때로는 듣기 싫은 아픈말도 해줄줄 알고, 당장은 듣기 싫은 말이라도 돌아보면 날 정말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것이었음을 꺠닫게 해주는 마음적으로 믿고 의지하게 되는 그런 선배 말이다.
그런 면에서 대표님은 나에게 좋은 선배다. 일때문에 개인사가 흔들려 괴로워할 때, 그렇게 아등바등 도망쳐나와 방황할때에도 언제나 그 끈을 놓지 않아주었던 사람. 일적으론 그렇게 많이 부딪치지만 그럼에도 사람으로썬 참으로 인간적이어서 존경하고 애증하게되는 그런 사람.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는 우리 팀 아이들에게 좋은 선배였던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좋은 선배였던가. 아니,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는 싶은가? 사실, 잘 모르겠다. 이미 돈으로 시작된 불만을 품고있는 아이들에겐 그 어떤 말을 한다한들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면접을 보던 때까 떠오른다. 큰 광고회사를 가고싶었지만 전공자가 아니어서, 준비한 게 없어서, 혹은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등등 참 많은 이유들로 큰 회사 서류조차 패스하지 못하고 왔었던 아이들. 그 많은 좌절을 겪고서도 광고일이 너무나 하고싶다고 간절함을 지니고 있었던 아이들. 불과 2년 전의 일인데 그 사이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다. 지나친 배려가 문제일까 싶기도 하고, 한번씩 따끔하게 배워야 할때마다 유하게 넘어갔던 것이 문제였나 싶기도 하고 참 오만가지 생각들이 많이 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복에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이대로 작별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정리가 필요하지 싶다. 일은 줄어 시간적 여유가 생겼지만 출근하는 맛이 참 안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