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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먹은 것

인천 냉면의 정체성을 지닌 연수왕냉면

by 설마맛있나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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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냉면과 관련한 나의 성장기의 특수성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나는 인천 태생이고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는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골목, 신포시장의 경인면옥 등 그 동네를 넘어 인천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냉면 맛집들까지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때문에, 여름이면 부모님 손 붙잡고 마실가듯 갔던 곳들이 손꼽히는 냉면 맛집들이었기에 나에게 냉면 맛집의 기준은 꽤나 엄격하며 까다로운 편인데 평양 스타일과 함흥 스타일, 그리고 황해도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냉면집들의 스타일들을 두루 맛봤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장점들만 뽑아내 믹스한 것이 인천 스타일의 '인천 냉면'이라 생각하는데 인천이라는 지역의 특색이 음식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 해방과 한국전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피난민들이 모여든 곳이고, 그 뒤 산업화를 거치며 일자리를 찾아 유입된 이들이 정착하며 인천의 음식문화는 전국 각지의 음식들이 짬뽕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오히려 더 진일보한 맛을 선보이는 메뉴들도 상당히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천의 냉면이라 생각한다. 

 

20대의 내가 즐겨먹던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냉면이었다. 특히나 여름철에는 거의 입에 달고 살다 시피 했는데 주 5일 동안 4일의 점심을 냉면을 먹었으니 상당히 애정 하는 메뉴였음에 틀림없다. 나의 냉면 사랑은 겨울에도 한 번씩 벅차(?)오르는데 요즘은 예전만큼 냉면을 먹진 않지만, 한 번씩 냉면이 생각날 때 찾는 맛집이 있다.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연수왕냉면이다. 물론, 냉면집 나름의 급을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내 기준에 인천 냉면집의 최상급은 '경인 면옥'이다. 다만, 이 집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과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 위해 찾는 냉면 맛집으론 다소 무리가 있다. 조금 가볍게 즐기고 싶은 급의 냉면으로 바로 이 연수왕냉면을 추천하는 것인데 이 집은 나름 인천 냉면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는 맛이라 추천하는 편이다. 다만, 이 집 역시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예전에 살았던 집 근처 동네라 추억팔이도 좀 할 겸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연수왕냉면 위치 및 전경

 

 

 

 

인천에 거주하고 이 연수동이라는 동네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대동월드 골목'이라 말하면 대번에 알겠지만, 지도상에 표기된 대로 대동아파트 옆길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여느 대형화된 맛집들처럼 따로 큰 독립건물을 쓰거나 하는 집이 아닌 상가 1층에 들어가 있는 집이다. 다만, 간판이 아주 눈에 띄게 잘 되어 있으므로 놓칠 일은 적어 보인다. 

 

 

 

역시나 먹으러 갈 때 가게 전경 찍는걸 깜빡하고 일단 들어가고 보는 스타일인 나는, 이 버릇을 고치질 못해 가게 전경은 카카오 맵에서 캡처-ㅎ

 

 

연수왕냉면 메뉴

 

냉면집이니 단연 냉면이 메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인천 냉면의 몇 가지 정체성이 나온다. 

 

 

1) 다양한 재료

- 인천 냉면들 중, 특히나 비빔냉면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대개 열무김치에 하얗게 무친 무채 정도는 기본인데 양배추와 당근채가 곁들여지는 곳이 대부분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다른 지역에서 비빔냉면을 시켜보면 저런 류의 야채가 곁들여지는 곳이 드물다. 각종 채 썬 야채들은 면과 함께 씹을 때 씹는 식감을 아주 극상으로 끌어올려준다. 거기에 매콤한 소스를 중화시켜주는 역할도 하는데, 뒷맛이 매운 특징이 있는 비빔 소스들을 살짝 눌러주는 맛이 있다. 

 

2) 매콤한 소스

- 인천 냉면들 중 유명한 냉면 맛집들의 비빔냉면을 맛본 이들이라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소스가 매콤한데 맛있다는 의견들이 많다. 이는 인공적인 매운맛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청양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인데 여기 연수왕냉면 역시 그렇다. 특히나, 이 매콤하면서도 달큰한 소스의 맛이 인천 냉면의 정체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첫맛은 달콤한 듯하다가 목구멍으로 면을 넘기고 입 안이 비었을 때 남는 그 '화-한'매콤함의 뒷맛이 다음 면발을 부르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3) 담백한 육수

- 인천 냉면의 정체성 중 또 하나가 바로 육수이다. 평양 쪽은 슴슴하고 함흥 쪽은 강렬하고, 황해도 쪽은 젓갈을 써서 선택을 하게 하던가 - 인천 냉면은 그 트라이앵글의 중간을 잡는다. 너무 슴슴하지도, 그렇다고 강렬하지도 않은 중간적인 맛- 이게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맛을 보면 딱 안다. 싱겁지도 그렇다고 짜거나 달지도 않은 그런 맛-. 난 이 맛을 담백하다 표현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는데 여기 연수왕냉면은 그 담백한 육수가 괜찮은 편이다. 

 

4) 어마 무시한 양

- 이건 인천 냉면 전체의 특징이라기보다 급수로 나눴을 때 엔트리 급의 냉면들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고급 냉면집들은 이들에 비하면 야박하다 싶을 만큼 양이 적게 느껴지는데 엔트리 급 냉면집들의 양이 어마 무시하게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그 유명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인데, 냉면 그릇이 세숫대야 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인천에서 냉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이다. 사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저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골목이 그만큼 뜨지도 않았고 다 쓰러져가는 냉면집 몇 개가 전부였다. 그러다 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얻자 마치 원조였던냥 여러 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그 골목 진짜 맛집을 아는 사람으로서 좀 씁쓸하기도 했다. 마치 선린동 쪽의 차이나타운과 비슷한 양상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골목에서 가장 맛있었던 집은 음식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맛이 너무 변해서 영 맛없어졌고 그 뒤로 화평동쪽은 발길을 끊었다.

 

어쨌든, 연수왕냉면이 그 세숫대야냉면 컨셉을 가져온듯 한데, 그보다 훨씬 양도 많고 깔끔하다. 

 

 

연수왕냉면 먹는 방법

이건 사실 연수왕냉면만의 냉면 먹는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인천까지 와서 냉면을 먹는다면 이렇게 한번 드셔 보시라는 차원으로 안내해드린다.

 

1) 노른자부터 육수에 녹이는 게 인천의 룰

인천 사람들은 냉면 먹을 때 노른자부터 부수어서 국물에 잘게 잘게 쪼개 넣어 녹인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전국이 다 냉면 먹을 때 이렇게 먹는 줄 알았는데 유독 인천 사람들만 이렇게 먹는다는 걸 알고 나서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육수에 노른자를 녹이지도 않고 그냥 계란부터 씹는다니. 세상에나! 특히 비냉은 무조건 노른자 깨서 녹이고 시작해야 된다. 인천의 국룰이다. 

 

 

2) 절반은 그냥 먹고 남은 절반에 냉육수를 붓는다

연수왕냉면의 비빔국수는 맛이 좋다. 옛날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골목의 맛집이었던 그 할머니가 해주던 냉면 맛이 난다. 매콤하면서도 달큰한 비빔냉면 소스와 다양한 야채들을 한 젓가락 떠서 입안 가득 넣고 쫄깃하고 아삭 거리는 식감을 느끼며 씹는 것이 즐겁다.

 

그렇게 반 정도 먹고 나면 일단 잠시 스톱하자. 나머지 반은 냉육수를 부어서 먹어야 한다. 첫맛을 나름 매콤하게 즐겼다면 중간부터 마무리까지는 담백하게 매큰한 색다른 맛을 즐기는 거다. 육수를 붓기 전보다 같이 곁들여 먹는 열무 무침과의 조화가 한층 더 기막히다. 

 

 

연수왕냉면의 또 다른 메뉴

 

이 날은 왕돈까스도 함께 시켜먹었는데 의외로 여기 연수왕냉면이 돈까스가 맛있다. 올 때마다 물냉, 비냉 조합만 먹었던 터라 왕돈까스는 처음 먹게 되었는데 분식집과 경양식의 그 중간 포지션으로 아내도, 나도 만족스러웠다. 

 

 

 

결론은, 연수왕냉면은 내 기준 엔트리급 냉면집들 중엔 상당히 괜찮은 맛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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